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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아직 하산하지 않았다, 네팔 아이들 '교육 셰르파'로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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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엄홍길휴먼재단 작성일24-01-15 10:27 조회7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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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오지에 학교 짓는 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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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길 대장이 서울 삼청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11차 휴먼스쿨(네팔건지) 준공식 당시 사진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학교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은 비포장도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돌밭이었다. 우리를 태운 지프는 쉴 새 없이 우당탕퉁탕 요동쳤다. 그런데도 앞자리의 엄홍길 대장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잠깐 눈을 뜬 그는 “이 정도면 고속도로지요. 지난번 오신 분은 좌석에서 높이 떴다가 떨어지면서 갈비뼈에 금이 갔어요”라고 했다. 커다란 등짐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는 소녀, 먼지 자욱한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소년들이 보였다.

2019년 2월, 나는 엄홍길휴먼재단(이사장 이재후)이 네팔 히말라야 오지에 짓고 있거나 운영 중인 4개 휴먼스쿨 현장을 다녀왔다. 마지막 일정은 16차 딸께셜 휴먼스쿨 건립 협약식. 카트만두 외곽 딸께셜의 40년 된 고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유치원에서 고교까지 아우르는 교육타운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협약식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축가를 불렀다. ‘꽃의 눈에는 꽃이 보이고, 재의 눈에는 재가 보인다’는 가사라고 했다. 모두 꽃처럼 예쁜 아이들이었다.

4년 뒤인 2023년 11월, 16차 휴먼스쿨 준공식이 열렸다. 엄홍길휴먼재단 7000여 후원자들과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이룬 역사(役事)였다.

엄홍길 대장은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기록의 사나이’다. 그런 철인도 16좌 마지막 등정을 앞두고 극도의 두려움에 빠졌다. 그는 히말라야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살려만 주신다면 히말라야 등정 중 숨진 셰르파의 가족을 돕고 네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일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엄 대장은 약속을 지켰다. 2010년 해발 4000m 팡보체에 1차 학교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딸께셜의 16차 학교까지 완성했다. 지금도 18,19차 학교를 짓고 있다. 지난 연말 서울 삼청동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엄 대장을 만났다. 


엄홍길휴먼재단 7000여 후원자들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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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2월, 16차 딸께셜 휴먼스쿨 기공식에 참석한 엄홍길 대장이 현지 학생들과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정영재 기자


Q. 딸께셜 16차 휴먼스쿨타운 준공식을 하셨네요.
“교육타운으로 짓다 보니 규모가 너무 커져서 후원도 분담을 했죠. 중고등학교는 바이오스타그룹에서, 유치원·초등학교와 도서관은 부산의 비구니 스님들이 운영하는 금천선원에서 맡았습니다. 바이오스타그룹의 라정찬 회장님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니까 이번 프로젝트는 종교를 초월한 ‘사랑의 항아리’인 셈이죠. 딸께셜 휴먼스쿨은 전체 정원이 1200명 가까이 됩니다. 네팔에서도 명문으로 소문났고, 각종 경시대회를 휩쓸고 있어 모두들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됐죠.”
Q. 학교 16개를 짓겠다고 했는데 19개가 됐네요.
A. “2008년 재단을 설립해 막상 시작하니 지어야 할 곳이 너무 많은 겁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배우고 싶어도 못 배우고, 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어요. 하루 종일 돌만 깨다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많거든요. 저희는 접근성 좋은 데 전시효과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고, 오지 중의 오지에 학교를 지으니까 다른 지역에서 ‘우리도 제발 지어달라’ 하는 걸 외면할 수 없었어요.”
Q. 첩첩산중에 건축 자재 옮기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겠네요.
A.  “우리나라처럼 트럭이 자재 부려놓고 가는 차원이 아니죠. 9차 학교(마칼루) 같은 곳은 트럭이 닿는 최종 지점에서 1박2일을 걸어야 학교 부지에 도착합니다. 깎아지른 골짜기를 두 시간 내려갔다가 반대쪽 V자형 협곡을 또 올라가야 해요. 건축 자재를 사람이 도저히 져다 나를 수 없으니 군 수송용 헬기를 동원했죠. 자재값보다 수송비가 훨씬 많이 들었어요. 인부들도 몇 달씩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매달렸습니다. 그 동안 지은 학교 대부분이 그랬죠.”
Q. 학교를 짓는 것만큼 유지 관리도 중요할 텐데요.
A.   “학생 수가 늘면서 2부제 수업을 해도 공간이 모자라니 증축을 해야 하고, 망가지고 고장난 것들도 바로바로 수리를 해야죠. 지어주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하면서 유지 보수를 해야 합니다. 책과 학습교재를 넣어주고, 새로 채용한 선생님들 월급도 지원하고 있어요.”
Q. 학교를 지을 때마다 큰돈을 기부한 분들은 어떻게 연결된 건가요.
A.  “다른 NGO 단체처럼 방송에 광고 내고 그럴 수 없었어요. 15년 동안 묵묵히 할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홍보됐고, 그래서 알음알음으로 찾아오거나 연락이 온 거죠. ‘내 후원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구나’ 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엄홍길재단은 약속을 지킨다, 확실히 다르다는 걸 보여주려 애썼고, 덕분에 재단 관련 단 한 건의 금전 사고도 없었습니다. 대신 저는 하룻밤 대여섯 개의 약속 장소를 뛰어야 했죠. 하하.”
Q. 휴먼스쿨 졸업생이 많을 텐데, 보은하는 친구들도 있죠?
A.  “등반 중 숨진 셰르파의 가족을 돕기 위해 매달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장학생 한 명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우리 학교 짓는 현장에 와서 큰 도움을 줬습니다. 남들이 버린 책을 주워서 공부해 간호학과를 졸업한 학생(프레라나 차우더리)이 있어요. 편하고 좋은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데도 해발 3450m에 있는 남체 병원에서 봉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11월 남체 커뮤니티병원 오픈식에 함께 갔죠. 이런 열매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얼마나 큰 보람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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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1월에 준공식을 한 16차 딸께셜 휴먼스쿨 모습.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곳에 있는 교육타운으로 조성했다. [사진 엄홍길휴먼재단]
 


요즘 산에 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영향도 컸다. 엄 대장은 “닫힌 공간에서 입까지 마스크로 차단되니까 다시금 공기의 소중함,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은 거죠. 요즘은 통신과 SNS가 발달해서 ‘괜찮은 데가 있다’ 하면 소문이 워낙 빨리 퍼집니다. 블랙야크의 ‘대한민국 100대 명산 도전’ 같은 프로그램도 등산인구 확산에 큰 힘이 되고 있죠”라고 분석했다.

엄 대장은 술자리에서 잔을 부딪칠 땐 늘 “기, 기, 기”라고 소리친다. 메시지를 보낼 때도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기운을 받으시라’는 덕담을 잊지 않는다. 그는 “산세에 따라 기운이 다른데, 좋은 기운을 받으면 모든 일이 잘 된다”고 했다.

수백년 된 나무는 신, 껴안고 기 받기를

Q.  어떤 마음으로 산에 가야 할까요. 

A.  “얼마 전에도 폭설과 한파로 입산금지가 내린 설악산에 두 남녀가 올라갔다 동사(凍死)했잖아요. 산에 갈 때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이성을 만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처럼 산에 갈 때도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연 앞에서 경거망동은 절대 안 되죠.”
Q.  구체적인 팁을 주신다면?
A.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합니다. 겨울철에는 100m 올라갈 때마다 거의 1도씩 기온이 떨어진다는 걸 명심하고, 기상과 바람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걸 고려해서 복장과 장비를 철저하게 갖춰야 합니다. 등산화와 등산 폴은 돈을 좀 들여서라도 품질 좋은 걸로 마련해야 합니다. 슬리퍼 신고 축구하거나 긴 바지 입고 수영하는 사람 없잖아요.”
Q.  기운이 좋은 산이 따로 있나요.
A.  “그럼요. 굉장히 편안하고 끌리는 산이 있는 반면 좋긴 한데 뭔가 어려운 산이 있어요. 바위도 속이 꽉 찬 게 있고 푸석푸석한 느낌을 주는 게 있거든요. 에너지가 다른 거죠. 특히 모진 풍파를 견디고 한 자리를 300년 500년 지키고 있는 나무는 그냥 식물이 아니라 신이라고 봐야 합니다. 등산 하다가 그런 나무를 만나면 꽉 껴안아 주세요. 편안한 기운을 받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기운을 느낀 곳은 제 모산(母山)인 원도봉산이고, 국내서 해맞이를 할 땐 강원도 용평의 발왕산에 갑니다.”

2024년 청룡의 해가 밝았다. 엄 대장은 “휴먼재단 설립 16주년인 올해 16개 휴먼스쿨이 마무리됩니다. 18,19차 학교를 지어 가면서 4차, 6차 학교 증축 공사도 진행할 거고요. ‘히말라야 오지에서 평생 짐꾼으로 살아야 할 아이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교육밖에 없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네요”라며 웃었다. 그리고 힘차게 새해 인사를 했다.

“엄홍길휴먼재단 가족들과 독자님들, 용의 기운으로 건강·행복·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기! 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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