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산] “엄홍길 대장은 힐러리 이후 네팔 교육에 가장 진심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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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엄홍길휴먼재단 작성일23-11-21 11:05 조회971회 댓글0건본문
에베레스트 초등 힐러리 원정대의 유일한 생존자 인터뷰
△ 세계 첫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힐러리 경과 함께 등반에 나섰던 칸챠 셰르파(왼쪽)와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성공한 엄 대장이 오지에 휴먼스쿨 건립 현황이 담긴 스카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배경이 된 구름 모습이 인상적이다.
올해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정 70주년이다.
지난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 출신 영국 등반대장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처음 밟은 뒤 에베레스트 등정 열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에베레스트 정복을 목표로 하는 산악인들의 발길은 계속되고 있다.
우기雨期·계절풍인 몬순시즌이 끝난 9월 말부터 2023-2024 히말라야 등정 시즌이 시작됐다.
이미 네팔 공항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히말라야 원정대와 트레커들로 붐빈다.
누구나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꾸지만, 에베레스트 등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봄 에베레스트 등정 중 사망자가 17명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에베레스트 등정 70주년을 맞은 올해 사상 최다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관문 남체바자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는 욕심은 죽음을 부르고, 마음을 비우면 등정登頂할 수 있습니다.”
세계 산악인의 성지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이자 ‘셰르파의 고향’ 남체바자르(3,440m)에서 만난 칸챠 셰르파(92)는
“에베레스트는 신의 영역이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인지라 가장 겸손한 자세로 나서야 등정 기회를 준다”고 조언했다.
또 “히말라야를 경외敬畏하는 사람만이 최고봉에서 숨 쉴 수 있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며 “이는 히말라야 여신女神의 배려”라고 했다.
그는 10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며 숱한 경험에서 얻은 지혜라고 했다.
네팔에서는 에베레스트를 네팔어로 사가르마타Sagarmata, 티베트 쪽에서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의미의 초모룽마Chomolunma로 부르며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칸챠 셰르파는 네팔의 살아 있는 산악 영웅이다.
1953년 뉴질랜드인으로 영국 등반대를 이끈 에드먼드 힐러리(2008년 사망) 경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을 때 막후 역할을 한 셰르파(길잡이)였다.
당시 힐러리 경과 함께 나섰던 등정팀 35명 중 현재 살아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다.
△ 엄홍길 대장이 엄홍길휴먼재단이 쿰부 남체바자르에 설립한 병원에서 에베레스트 원정 도중 설벽에서 추락사한 술딤 도르지 미망인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
엄 대장은 셰르파 미망인과 자녀들의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 공격을 앞둔 최후의 캠프(8,500m)에서 힐러리 경과 동료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1986년 사망)의 등정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정 사실을 가장 먼저 세상에 전했다.
에베레스트를 향한 전진기지이자 콩대리(6,187m) 등 6,000m를 넘는 산군山群에 둘러싸인 남체바자르 칸챠 셰르파의 집에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올해 에베레스트 초등 70주년을 맞은 그는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마침 추석 연휴 기간에 에베레스트 남체바자르를 찾은 엄홍길 대장 일행과 우연히 만났다.
연세사랑병원 고용곤 원장과 강경탁 스카이브 대표 등 의료 봉사팀도 함께였다. 네팔과 한국의 두 산악 영웅은 서로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만난 건 처음이었다.
엄 대장은 “칸챠 셰르파의 명성만 듣고 있었는데 직접 만나니 영광이다”고 인사를 했다.
엄 대장은 칸챠 셰르파로부터 힐러리 경과의 등반 과정을 상세히 들었다.
그는 “칸챠 셰르파로부터 ‘당시 제대로 된 등반장비 하나 없이 야크 가죽으로 만든 신발과 옷만 입고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는데,
‘힐러리 경이 쿰부에서 아이스폴(빙폭)을 지나 폭이 넓은 크레바스를 발견했는데 가지고 간 사다리가 짧아 도저히 건널 수 없게 돼 망연자실하자,
동료와 다시 마을로 내려가 스무 그루의 나무를 베어 들고 와서 다리를 놓고 건너갔다’는 그의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칸챠 셰르파가 전하는 에베레스트 초등 당시 상상을 초월한 에피소드를 자신의 일처럼 공감했다.
△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이끌었던 에베레스트 원정대. 맨뒤 왼쪽에서 세 번째가 힐러리 경이고 동그라미 표시가 칸챠 셰르파. 칸챠 세르파는 당시 35명의 원정대원 중 유일한 생존자다.
힐러리 경 만나 인생 대전환
칸챠 셰르파는 남체바자르의 원주민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1900년대 초 티베트 쪽에서 건너온 남체바자르의 첫 거주자였다.
당시 이곳 주민들은 버섯과 감자로 연명했다. 칸챠 셰르파는 생필품 마련을 위해 야크를 끌고 티베트를 오가며 소금과 옥수수를 실어 날라야 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힐러리 경이 이끄는 등반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는 힐러리와 등반하기 전 에베레스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조차 몰랐다고 했다.그저 ‘산신山神의 어머니’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칸챠 셰르파는 힐러리 경의 등반대를 보고 눈이 뒤집혔다. 방풍 옷도 처음 봤고 등산화 등 등반장비를 처음 봤다고 했다.
또 힐러리 경의 첫 이미지는 온화하고 눈이 참 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힐러리 경은 늘 나에게 ‘터프가이이자 유쾌한 친구’라고 불렀다”고 했다.
칸챠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첫 등정은 네팔과 셰르파의 존재를 알린 대사건이었다”며
“누구나 텐징과 힐러리가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것을 알지만, 원정대 전체가 당시 얼마나 고통스럽게 애를 썼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1950년대 유럽인들이 산행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집착하고 자부심을 가졌다면, 셰르파들은 산에 대한 경외심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던 때”라고 했다.
1등보다 조력자로 욕심 없이 살아온 인생
칸챠 셰르파는 “당시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에서 내려왔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에베레스트 등정에 6차례 나섰지만, 정상에 오르는 대신 조력자 역할만 했다고 했다. 물론 마칼루(8,463m),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오르긴 했단다.
지금은 조력자에 그쳤던 셰르파들이 등정하는 시대고, 네팔 산악인들도 어느 나라 산악인 못지않게 히말라야 8,000m봉 등정에 나서고 있지만,
자신은 평생 등정이나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하루 125달러를 받으며 무리하는 셰르파들이 있지만, 나는 하루 1달러를 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칸챠 셰르파는 “남체바자르는 실제로 에베레스트 등정과 베이스캠프를 노리는 산악인들이 몰려들지만
거의 고산병으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천천히 서서히 고소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곳 남체는 일단 고산병을 앓거나 극복하거나 하는 산악들의 시험대이며,
이곳을 통과하면 에베레스트의 영역에 접근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되돌아가야 한다. 무리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에베레스트 초등 즈음에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셰르파들의 희생이 많았던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지금까지 300여 명의 셰르파의 주검을 접했다고 했다. 1970년 눈사태로 셰르파들이 속절없이 죽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고산 등반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마나슬루(8,156m), 마칼루, 안나푸르나 등 8,000m급 고봉 베이스캠프 주변으로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산악인과 트레커들의 등반을 돕는 일을 해왔다.
또 힐러리 경의 영향을 받아 ‘히말라얀 트러스트 재단’을 만들어 셰르파의 교육·복지 사업에도 나섰다.
△엄홍길 대장(왼쪽)과 함께 의료봉사에 나선 연세사랑병원 고용곤 원장이 남체에서 해발 4,000m에 이르는 샹보체까지 등반하며 무릎관절 환자를 돌보는 일정을 소화했다.
고 원장은 엄홍길휴먼재단의 네팔 교육지원 사업과 오지마을 환경 개선 사업에 감동, 앰뷸런스 2대(6,000만 원)와 2억 원을 기부했다.
엄홍길 대장, 힐러리 계보 잇는 산악인
그는 엄 대장이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해 힐러리 경 이후 가장 활발히 네팔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엄 대장은 에베레스트 길목 팡보체(3,985 m)에 첫 학교(휴먼스쿨)를 지어 기증한 데 이어 남체바자르에 유일한 병원을 지어 기증했다.
셰르파들과 세계 각국에서 오는 트레커들이 산행 중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시 이곳에서 치료하도록 장소를 마련한 것이다.
팡보체의 학교는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해발 7,500m 설벽에서 추락한 술딤 도르지(당시 18세) 셰르파의 죽음을 기리며 휴먼재단의 첫 학교를 세운 것이다.
이곳은 네팔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엄 대장과 함께 의료봉사에 나선 고용곤 병원장은 이번 방문 동안 네팔 오지의 최대 현안인 산악 앰뷸런스 2대를 기증한 데 이어
엄홍길 휴먼재단이 설립한 학교를 위한 발전 기금 2억 원을 쾌척했다.
또 관절 질환을 앓고 있는 카트만두와 남체바자르의 환자 3명을 국내로 초청, 인공관절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칸챠 셰르파는 “힐러리 경이 에베레스트 등정 후 이곳에 학교와 다리 등 다방면의 지원 사업을 했는데,
지금은 엄 대장이 가장 활발히 네팔의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연신 감사해 했다. 고 원장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집은 에베레스트로 가는 산악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남체바자르 언덕에 있다.
그는 “매일 에베레스트를 향해 걷는 산악인들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는다”며 “이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인 인생의 터전 덕에 100세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칸챠 셰르파는 “에베레스트 등정 70주년을 맞은 올해도 매일 세계 각국서 수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찾는다”며
“정상 등정도 베이스캠프 도전도 좋지만 무모한 도전보다는 안전한 산행에 나서야 하고,
무엇보다 환경보호를 우선해야 히말라야신도 인간의 삶도 행복할 것이다”고 충고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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