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인생은 `빚`, 누구나 은혜 입어…오늘도 산에 오른다, 빚 갚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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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엄홍길휴먼재단 작성일19-06-05 10:47 조회3,668회 댓글0건본문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9/06/385148/
"연습한 거 다 빼고, 공식적으로 오른 높이만 320㎞쯤 되나. 그 도전의 길에서 살아남은 거야. 그건 그 `높이`만큼의 은혜를 입은 거고, 그 은혜를 돌려줘야지."
`히말라야 16좌(히말라야는 14좌다. 그는 두 군데를 중복으로 정복해 16좌 완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완등의 산(山)사마 엄 대장.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평생을 함께한 히말라야 고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고봉은 어디일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데가 어딨어. 그래도 기억에 남는 건 2007년 16좌 마지막 도전 코스였던 로체샤르(8382m)가 아닐까." 웃으며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당연히 남다른 사연이 있을 터. 평생 살벌한 고봉을 올랐으니 사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산 거나 다름없다. 그때마다 그를 지탱해 준 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빌린 목숨`이다. "옆에서 응석 부리던 녀석(대원)들이 눈앞에서 죽어봐. 멍해. 하늘이 노래. 다리가 풀리지. 다 때려치우고 싶거든. 그때마다 생각해. 내 목숨, 엄홍길의 목숨은 내 것이 아니다. 그 녀석들이 나에게 빌려준 거다. 그래 다시 일어나서 그들 몫까지 해야지."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8000m 고봉·16개 봉우리) 완등이라는 신화를 쓴 그지만 매번 도전 때마다 대원과 셰르파 2~3명을 잃었다. 살을 도려내는 그 아픔. 그래서 그는 늘 `빚을 진 생명`을 살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목숨 빚` 덕에 2000년 칸첸중가 정상 8000m 빙벽에 대롱대롱 10시간을 매달려 기를 쓰고 살아남았다. 빚을 진 생명 덕에 2007년 16좌 마지막 도전인 `로체샤르`에서 꼬박 12시간 사투 끝에 기어이 실명한 후배를 등에 업고 내려왔다.
그가 인생을 바꾼 포인트로 꼽은 로체샤르. 그는 지금도 날짜와 시간, 그 장면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캠프3쯤이야. 밤새 눈이 펑펑 퍼붓더라고. 사면 바로 옆에 텐트를 쳤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눈 뜨자마자 바로 대원들에게 출발 준비를 시켰어. 바로 그 순간 눈사태가 덮쳐버린 거야." 순식간이었다. `쿠르릉` 천지가 무너지는 굉음이 들렸고, `퍼퍽`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니 셰르파 텐트가 눈 밑에 묻혀버렸다. 미친 듯이 맨손으로 눈을 팠다. "칼 가져와." 본능적으로 외쳤고, 그 칼로 셰르파들이 묻힌 텐트를 찢어버렸다. 그 속에서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었던 셰르파 3명. 그들은 얼마간 끌어안고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고 했다.
"딱 3분 사이 일이었지. 사고는 그런 거야. 예기치 않은 순간 딱 1~2초. 그때 일어나는 거거든." 맨손으로 눈을 파면서도 그는 `희망` 하나만을 생각했다.
이 지역 환경은 척박 그 자체다. 절대 학교가 들어설 수 없을 정도의 오지 중 오지. 배움의 희망을 주는 학교 건립은 이들 주민에게는 기적을 일구는 일이다.
1차 휴먼스쿨이 들어선 팡보체가 그렇다. 자동차 진출입은 엄두도 못 내는 4000m 고지. 세계 구호단체들도 팡보체 하면 손사래를 친다.
그는 말한다. "나 자신을 위해 산을 오른다는 마음을 버렸더니 16좌 완등 기록이 이뤄졌거든.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힘들고 고통스럽지. 하지만 내가 목숨 빚을 졌다. 그래서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방향만 틀면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나. 남의 목표를 이뤄주기 위해 가는 길, 고통이 행복으로 바뀌더라고." 인생에는 가끔 좋은 빚도 있는 법이다.
[신익수 여행·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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