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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엄홍길 “셰르파 600m 추락, 강력한 눈폭풍에 철수... 정상 다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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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엄홍길휴먼재단 작성일24-05-02 10:33 조회4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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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답봉 정상 200m 앞두고 일단 철수

엄홍길 “한-네팔 수교 50주년 이정표 세울 것”

본인도 얼음못 떨어져나가며 추락

머리 충돌 전 팔꿈치로 버텨 구사일생

 조선일보가 특별 후원하는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 ‘한국-네팔 우정 원정대 2024(Korea-Nepal Friendship Expedition 2024)’가 히말라야 미답봉(쥬갈 히말라야 피크·6590m) 정상을 불과 200여m 앞두고 철수했다. 한국-네팔 합동 원정대를 이끄는 산악인 엄홍길(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UHF·64) 대장은 1일 “지난 27일 쥬갈 히말라야 정상 등정에 나섰던 원정대는 정상 250m 근방까지 접근했지만, 강력한 눈폭풍으로 등정을 포기하고 일단 하산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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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 양국 합동 등반대장으로 히말라야 미답봉 쥬갈 히말라야 원정을 지휘 중인 엄홍길 대장이 정상 등정을 위해 사투를 얼이는 모습. /원정대(엄태철) 


◇눈폭풍 속 정상 200여m 남기고 철수

그는 기상 이변과 매일 눈폭풍이 몰아닥치는 엄청난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야간 등정을 시도하는 무리수를 뒀지만, 정상에 도달할수록 엄청난 위력을 동반한 눈폭풍에다 가시거리가 채 2m도 되지 않는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고 했다.

원정대는 엄 대장과 대한구조협회(KRA) 대원 6명, 그리고 네팔등산협회(NMA) 소속 베테랑 산악인이자 셰르파 3명 등 10명이 로프를 깔면서 등정에 나선지 1박2일, 25시간의 사투 끝에 하이캠프 복귀에 무사히 성공했다. 대원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게 하산한 것에 위안을 삼았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엄 대장과 구은수(대한산악구조협회 부회장·54) 대장은 크레바스가 양쪽으로 5m 간격으로 펼쳐진 길에 난 발자국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밤중에 단지 헤드 랜턴에 의지한 채 걸어나온 것을 알고 서로 “기적이었다”라는 표현을 했다. 엄 대장은 “자칫 둘 중 한 명이라도 크레바스에 발을 디뎠다면 둘 다 생명을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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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갈 히말라야 원정에 나선 원정대원들이 로프를 붙잡고 정상 공격에 나서고 있다. 경사가 70도 넘는 가파른 지형으로 구성돼 있어 엄청난 체력을 요한다. /원정대(엄태철) 

엄 대장은 “산세가 너무 험악하다. 하이캠프(5300m)를 떠나면 바로 70~80도 경사면이 펼쳐져 수직 벽을 타는 듯한 고난도의 지형인데다 악천후로 애를 먹고 있다”며 “하지만 원정대는 좌절하지 않고 재도전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상 하이캠프를 구축한 뒤 캠프 1, 캠프 2를 설치하면서 정상 공격을 조율해야 하는데 쥬갈 히말라야는 하이캠프를 떠나면 완만한 곳이 없어 텐트 1동 설치 공간 확보조차 어렵다. 캠프 설치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캠프 1을 떠나면 당일 아니면 1박2일 동안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사활을 걸고 정상 등정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고 상황을 전했다.


◇난공불락의 요새 6000m급이지만 8000m 맞먹는 험준한 지형

그는 “무엇보다 쥬갈 히말라야 피크는 6000m급이지만 거의 8000m급과 유사한 지형과 험준한 산맥으로 연결돼 쉬 공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특히, 원정 기간 계속된 기상이변으로 눈사태와 낙빙 등 위험 요소가 산재해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다”고 했다.

엄 대장은 “대원들 모두 초인적인 인내심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채 반드시 등정에 성공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며 “며칠 동안 체력을 보충한 뒤 재도전에 나서겠다”고 했다.

쥬갈 히말라야 원정대의 정상 등정의 최대 변수는 날씨다. 매일 점심때만 어김없이 불어닥치는 눈폭풍으로 시계가 10m도 확보되지 않은 악천후 속에 생사를 오가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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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이 70도 넘는 경사로 구성된 쥬갈-히말라야 정상을 향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쥬갈 히말라야원정대(정재균 대원) 


원정대는 지난 5일 서울을 떠나 카트만두에 도착했으며, 8일부터 베이스캠프를 향한 카라반(이동)을 시작했다. 13일 쥬갈 히말라야 4700m 고지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베이스캠프에서 정상 공격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15일 베이스캠프에서 600m 위에 전진기지 격인 하이캠프(5300m)를 구축, 정상 도전을 위한 루트 설정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아무도 오르지 않은 미답봉인데다 애초 구상했던 등정로 설정 작업이 예상과 달리 정상과의 길이 단절되는 바람에 첫 시작부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엄 대장은 한발 물러서 쥬갈 히말라야 정상 공격을 위한 정밀한 루트 재설정에 나서 애초 등정로 대신 정상을 직접 공격하는 정공법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등정지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145km 떨어진 곳인 주갈 히말라야로 애초 네팔 정부가 한국-네팔 수교 기념으로 60여년 만에 공개한 처녀 등정지라 루트를 만들어 가야 하는 고난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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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을 향해 가는 대원들. 눈길 발자국은 대원들의 이동 시간 단축에 긴요하다. 하지만 매일 내리는 눈은 전날 만들어 놓은 발자국 흔적조차 없애 여간 야속할 수밖에 없다. /쥬갈 히말라야원정대(정재균 대원) 


엄 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은 지난 19일부터 하이캠프를 제2의 베이스캠프 삼아 정상으로 향하는 루트 개척에 몰두했다. 하지만 매일 눈폭풍이 몰아쳐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길을 만드는 작업(러셀)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하루 고생해 길을 만들어 놓아도 다음날 눈이 내려 흔적조차 없어져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하이캠프(5300m) 떠나면 완만한 곳 없어 추가 캠프 설치 못 해

지난 25일 며칠 고생 끝에 5800m 고지에 캠프 1을 차리려 했지만, 도저히 텐트를 칠만 한 장소가 없었다. 한국-네팔 합동 원정대는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13일이 지났지만, 추가 캠프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하이캠프에서 정상 등정을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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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캠프(5300m)를 떠나면 완만한 곳 하나 없어 대원들은 앉을 곳도 없다. 바위 틈에 기대 겨우 휴식을 할 수 있다. 그나마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휴식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쥬갈 히말라야원정대(정재균 대원) 

정상 등정 일을 조율하던 엄 대장과 대원들은 눈폭풍이 잠잠하기를 기다리다 마침내 27일을 D데이로 설정했다. 하지만 쥬갈 히말라야 지역은 베이스캠프 설정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눈폭풍이 몰아쳐 더 이상의 날씨 덕을 보는 대신 보름 전후로 시야가 다소 확보되는 야간 산행에 기대를 건 것이다.

엄 대장은 “이번 원정은 하루하루 날씨와의 전쟁이었다”며 “봄인데도 동계 등반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추위와 눈바람이 몰아 닥쳤다. 4월 베이스캠프에서 이런 추위를 맞아본 것도 평생 처음이다. 하지만, 시련은 있을지언정 극복하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한국과 네팔 수교 50주년을 맞은 특별 산행이니만큼 반드시 성공해 양국 간 큰 이정표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번 원정대가 베이스캠프 도착한 첫날부터 하루도 눈이 내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며칠 동안은 베이스캠프와 하이캠프에 설치한 텐트가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강력한 눈폭풍이 불어닥쳐 극도의 공포감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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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캠프(5300m)의 밤. 원정대원들이 정상 공격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한 하이캠프. 눈밭에 설치한 이 텐트가 그나마 잠시 휴식하고 잠자는 공간이자 충전의 장소로 대원들에게 세상 가장 고마운 공간이었다. /쥬갈 히말라야원정대(변태철 대원) 

쥬갈 히말라야 원정지는 베이스캠프, 하이캠프, 정상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오전에 잠시 맑다가 11시쯤 되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날씨가 돌변한다. 가스(구름이)가 몰아닥치면서 눈과 바람이 어우러진 눈폭풍이 휘몰아치면서 베이스캠프마저도 집어삼킬 듯 두렵고 가공할만한 분위기로 돌변한다. 정말 한결같다. 

하루는 대원들 전체가 텐트를 사수하느라 바람 방향을 상대로 사지로 텐트를 붙잡고 저지하면서 3시간 동안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베이스캠프 집어삼킬 듯한 눈폭풍의 연속, 하켄 떨어져 추락, 눈사태 휩싸여 추락 등 연이은 사고

이번 원정은 크고 작은 사고도 계속됐다. 지난 17일 하이캠프에서 캠프 1 구축을 위해 트래버스(수직이동)에 나섰던 변준기 대원이 루트 개척 작업 중 선등자인 락파 셰르파가 바위에 박아둔 하켄(머리 부분에 구멍이 있는 못, 바위 틈새에 박아 자일을 꿰거나 손잡이나 발판 따위로 쓴다)이 떨어져 추락하면서 로프에 손목이 뒤틀리는 사고가 발생했고, 21일 캠프 1 구축에 나섰던 네팔 대원 다메 셰르파는 눈사태를 맞고 600m 이상 아래로 추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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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박아둔 하켄이 뽑히면서 추락 사고로 손목이 뒤틀린 변준기 대원이 베이스캠프에서 헬기편으로 긴급 후송되고 있다. /정병선 기자 

다행히 대원들의 신속한 구조작업으로 구사일생했다. 하지만 구조 헬리콥터가 악천후로 3시간 정도 베이스캠프에서 대기하다 되돌아가려는 순간 잠시 구름이 걷히면서 그를 카트만두 병원으로 급송하는 데 성공했다. 

27일 등정 당일엔 엄 대장도 얼음에 박힌 아이스스크루(얼음에 박는 못)가 떨어져 나가면서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는 등 악전고투하고 있다. 엄 대장은 머리가 바위에 충돌하기 직전 어깨를 갖다대며 큰 사고를 모면했다. 원정대는 이런저런 사고를 겪었지만, 오히려 등정 성공을 위해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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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사고를 당한 변준기 대원을 헬기에 태워 카트만두로 후송하는 역할을 한 다메 셰르파(노란색)가 정착 며칠 후 눈사태에 휩쓸려 600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변준기 대원처럼 헬기로 긴급 후송됐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정병선 기자 

엄 대장은 “3건의 사고 모두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이번 등정의 의미를 히말라야 신께서도 보살핀 것 같다”며 “히말라야 등정은 히말라야 신의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엄 대장은 지난 2007년 로체(8400m) 등정을 마지막으로 8000m급 16좌(봉) 완등에 성공하면서 고산(高山) 등정을 중단했다. 어찌 보면 산악인으로서 현역 은퇴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올해 한국과 네팔 수교 50주년을 맞아 17년 만에 고산 등정에 나서며 원정대를 이끌고 있다. 이번 등정지는 네팔의 쥬갈 히말라야 산군(山群)에 들러 싸인 봉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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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4700m에 구축한 베이스캠프는 오전 맑은 날씨를 보이다가 오전 11시만 되면 어김없이 가스(눈구름)가 밀려들며 눈과 바람을 동반한 눈폭풍이 몰아닥쳤다. /정병선 기자 

특히, 이번 원정에 나선 원정대원들은 엄 대장보다 10년 이상 젊은 대원들로 구성돼 산악인 사이에 나이를 초월한 선후배 산악인 간 단결력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두려움과 공포감 엄습했지만

원정에 참가 중인 김동진(제주구조대) 대원은 “하이캠프 구축하기 위해 나선 첫날, 허리까지 눈이 빠지는 열악한 상황에서 엄 대장이 선등하며 직접 눈을 헤치며 길을 내는 러셀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60 대 중반의 선배라기보다는 이제 한창 힘을 쓰는 우리보다 더 체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소문으로 듣던 엄 대장은 엄 대장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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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4700m)를 떠나 하이캠프(5300m)로 이동하는 엄홍길 대장(앞에서 둘째)과 대원들. /정병선 기자 

변준기(대전구조대) 대원은 “26일~27일 등정일 근 25시간 동안 추위와 싸우면서도 눈이 뭉쳐 비 오듯 내리는 스노우 샤워에다 낙빙(落冰)을 150번 정도 맞으며 하산했다”며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지만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엄 대장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이번 원정대는 엄홍길휴먼재단(UHF), 대한산악구조협회(KRA), 네팔등산협회(NMA)의 합동 등반이다. 엄홍길 대장이 양국 합동 등반대장으로, 한국 측 구은수(KRA부회장·54) 등반대장을 비롯한 정재균(전북구조대·52), 백종민(강원구조대·51), 김동진(제주구조대·51), 엄태철(대구구조대·48), 변준기(대전구조대·46) 대원 등 7명이 나섰다.

네팔에서는 시샤팡마(8013m)를 제외한 히말라야 13좌 등정자로, 최연소 K2(8611m) 등정자이자 네팔 여성 최초 안나푸르나 1봉(8091m) 무산소 등정자인 다와 양줌(34·NMA 부회장·베이스캠프 동행), 히말라야 9좌 최단 등정 기네스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14차례 에베레스트(8848m) 등정자인 라크파 덴디(36), 람바 바부(35), 다메 셰르파(30) 등 양국의 베테랑 산악인들로 합동 등반대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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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에서 한국과 네팔 대원들이 한-네팔 수교 50주년 기념 합동 등반의 성공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병선 기자

엄 대장은 2일 베이스캠프에서 다시 정상 공격을 위한 정밀 점검을 한 뒤 최종 등정 일을 결정할 예정이다. 

원정대는 눈폭풍이 불어닥치는 극한 환경에다 하루하루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난공불락의 쥬갈 히말라야 정상 도전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쥬갈 히말라야 베이스캠프(JHBC)=정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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